오랜만에 글을 쓴다. 날이 풀리기 시작한 겨울의 끝자락에 다녀온 전시에 관한 이야기다. 오랜만에 키보드를 두드리려니 어색한 기분이다. 요새는 또 하도 AI로 작업하다 보니 점점 글쓰기 실력이 퇴화하는 것 같기도 하다. 위기다.. 극복해야 해!! 글쓰기 꾸준히 이어가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오늘은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연희정음'에서 진행된 김중업 X 르코르뷔지에 건축사진전을 다녀온 후기를 짤막하게나마 남기려 한다.
01
전시 자체는 아무래도 사진전이다보니 평면적이고 단조로웠지만, '연희정음'이라는 공간을 볼 수 있었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면 건축학도로써 매우 매우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연희정음'은 본래 주택으로 계획된 건물이었지만 완공 후에 카페와 주점으로 쓰이며 본연의 쓰임과는 다르게 사용되었다. 4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훼손되거나 공간이 변형되었고, 이를 건축가가 처음 계획했던 것처럼 되돌리는 복원 과정을 거쳐 연희동의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으로 문을 열게 되었다.


02
'연희정음'은 처음부터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계획된 건물이 아니라서 그런지 계단실이나 화장실이 협소했고, 전체 건물 자체도 엄청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곳은 건물 구석구석의 디테일을 섬세하게 다듬어 독특한 공간감을 준다.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면 약간은 어둑한 현관에 쨍한 색감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데 이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나오는 빛이 은은하게 퍼지면서 아늑함을 만들고 있다. 건축가 김중업은 비정형의 곡선을 잘 다루기로 유명한데, 연희정음의 계단실에서도 그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달팽이 껍질같은 나선형의 계단은 주택으로 계획된 공간이기 때문에 폭이 넓지 않아 한 명씩 오르내려야 하는 점이 불편하긴 했지만, 자유로운 곡선의 손잡이라든가 흰 벽과 고동빛 계단의 대비라든가… 되게 유럽의 가정집 같은 느낌이라 이국적이었다. 또한, 대부분의 내벽들은 전시를 위한 가변적인 공간 활용을 위해 허물었지만, 일부 문짝을 남겨둔 공간들이 있어서 기존 주택에서의 개별 실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특히나 기억에 남는 건 천장이었다.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훼손되었던 건물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남은 잔재인지 알 수 없지만, 보통의 매끈한 천장과는 다르게 목재 부재가 드문드문 섞인 투박한 모습이었다. 불규칙성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느낌이 좋았다. 연희정음을 직접 방문하게 된다면 꼭 한번 위를 바라보길!!




03
반원 천장의 다락방 같은 공간에서 이어진 '르코르뷔지에의 건축 세계'에 관한 강연에도 참석했다. 르코르뷔지에의 일생을 연구해오신 경희대학교 이관석 교수님께서 진행하셨는데, 건축에 깊은 지식이 없는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셔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다. 건축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던 르코르뷔지에의 일생을 쭉 들으면서 학부시절 공부했던 모듈러라던지 도미노 시스템이라던지, 또 도면을 수없이 봤었던 빌라 사보아, 유니테 다비타시옹 등등 아는 내용이 나올 때마다 추억 돋았다. 먼가 학문적으로 건축을 다시 접한 기분이라 리프레시한 느낌이었다.
여기서 잠깐! 갑자기 뜬금없이 르코르뷔지에가 왜 나오는가 궁금할 것 같다. 사진전의 제목에서도 김중업과 르코르뷔지에를 연결 짓고 있는데, 이는 건축가 김중업이 지금 내 나이대쯤에 르코르뷔지에의 사무실에서 함께 일을 하며 모더니즘 건축에 대해 접하고 배웠기 때문이다. 함께 일을 하며 작업한 건물들도 있고, 김중업의 건축관에 영향을 많이 주기도 했던 관계라 이번 전시가 기획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르코르뷔지에 강연을 듣다보니 나는 오히려 이전 회차에 진행했던 김중업의 건축 인생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니어 건축가가 시니어 건축가로부터 배움을 얻고, 그것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다듬어 가는 과정을 김중업 건축가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내왔는지 영감을 얻고 싶달까? 아직 신입 타이틀을 벗지 못하는 나에게, 건축가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나에게 아주 조금의 방향성을 찾을 수 있는 힌트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오.. 당장 김중업 건축가의 인생을 알아보러가자~
일단 전시 한켠에 준비되어 있었던 추천 서적 「김중업 그 유산과 미래」 알라딘에 중고서적으로 뜨기를 기다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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