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의 한적한 주거 골목 사이 위치한 'Fezh'에 다녀왔다.
처음 Fezh를 마주했을 때 느껴졌던 감각은 압도감이었다. 골목을 굽이굽이 돌아 우측으로 꺾으면 도로를 향해 거대한 루버 파사드의 볼륨을 돌출하며 Fezh는 그 존재감을 드러난다. 정면에서는 거대한 볼륨의 곡선이 부드럽게 아래로 이어지며 깊이감 있는 외부 테라스 공간을 만든다. 이 깊이감은 자연스러운 유입을 위한 끌어들임을 만든다.



Fezh는 이타미 준(유동룡) 건축가의 딸이자 후배 건축가인 유이화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로, 이곳에서 1월 22일까지 이타미준과 유이화, 두 부녀 건축가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전시가 진행된다. 저녁에는 Fezh의 건축주와 유이화 건축가가 함께하는 Fezh 탄생기에 관한 강연도 이어졌는데, 건물을 설계하는 과정에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전시를 다녀와서 느낀 감정과 생각이 더 사라지기 전에 정리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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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이타미준의 건축부터 시작되었다. 조금 흥미로웠던 부분은 건축 모형을 벽면에 붙인 방식이었는데,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의 Top View를 강조하여 어떤 의도를 표현하고자 했을지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단일 재료로 만들어진 모형은 건축의 형태적 특징을 더욱 강조해 주어 생각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2008년부터 이어진 클럽하우스 디자인은 바람에 순응하는 듯, 부드럽게 굽어지는 지붕선을 가지고 있다. 이 지붕선은 몇 차례의 프로젝트를 거치면서 진화해 왔다. 초기의 형태는 곡선, 직선, 다각형, 원형, 타원형이 얽힌 퍼즐 같은 모습이었다면, 이후에 지어진 C.C 클럽하우스는 복잡한 요소를 모두 없앤 두 개의 덩어리로 이루어진 모습이 되었다. 2012년에 설계된 서원 힐스 골프 클럽하우스에서는 형태적 단순함을 유지한 채 지붕살 사이로 빛이 새들 수 있도록 틈을 내거나 공간의 중심에 타워형의 구멍을 내어 분위기를 환기하는 등 디테일한 디자인 요소를 추가하여 변화를 만들었다. 건축이 건축을 거치며 더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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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미 준의 건축은 복잡스러움이 없다. 그는 하나의 형태, 하나의 덩어리로 귀결되는 건축을 위해 복잡함 대신 단순함을 선택했다. 흔히 '덩어리'라는 말을 떠올리면 투박하고 단조로운 형태를 떠올리게 되는데, 그럼에도 이타미 준의 건축에서는 이 덩어리가 단순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집요하게 다듬어 나간 디테일과 소재가 만드는 독특한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이타미 준은 소재의 물성을 이해하고 다루는 방법을 너무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벌레가 먹거나 쉽게 변형되는 목재, 무겁고 거칠며 불규칙적인 크기로 다루기 어려운 석재, 녹슬고 색이 변하기 쉬운 철재 등 모든 소재들은 한계가 명확하다. 하지만 이타미 준은 이 한계를 '건축적 한계'로 단정 짓지 않았다. 그는 부서지면 다시 세우면 되고, 녹이 슬면 바꾸면 된다는 마인드로 재료가 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긴다.
유이화 건축가가 이타미 준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겪은 일화로, 외벽에 사용한 목재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쩍쩍 갈라지기 시작하자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버지께 여쭤보니 "갈라짐 조차도 의도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아니 몇 수 앞을 내다본 거냐고!
이타미 준은 요소가 많은 건축에서 시작해서 요소를 점점 줄여나가는 식으로 진화했고,
요소가 제거된 하나의 덩이리의 모습에서 종결됐다고 볼 수 있다.
장용순, ⌜SPACE ⌟ 1월호,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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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맥락으로 이타미 준은 새로 지어진 건물만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이 건물을 사용하면서 쌓이는 아우라가 발현되는 건축을 하고자 했다.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짓어진 순간만을 생각하는데, 건축은 짓고 나서도 그 안에 기억과 추억을 남기며 계속 이어진다. 건축과 시간의 관계성을 고려하는 것은 건축을 단편적인 결과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유기체로 여기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니 전공수업에 배운 내용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 같다. 건축물의 생애주기 같은 용어들…
어쩌면 건축이 완성되는 시점은 건축이 쓰이면서 사람들 틈에 녹아들고 도시 사이에 자리 잡는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를 모두 관람하고 난 뒤 참여했던 강연에서 'Fezh'라는 공간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짧은 영상들을 보았다. 동네 주민들이 반려견과 함께 어울리며 휴식하고 어린이들과 외국인이 체스판을 사이에 두고 머리를 굴리거나 젊은 청년들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모여 다 함께 러닝을 가기도 하는 등의 모습을 보니 '와 나도 여기에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남동의 커뮤니티 센터로써 'Fezh'가 완성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커뮤니티 센터를 설계할 때에는 특정한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아닌 다목적 활동을 위한 가변적이고 유연한 공간을 계획하기 때문에 'Fezh'가 지어진 시점에는 텅 비어있었을 것이다. 이곳에 사람, 행위, 목적이 채워지면서 비로소 건물에 활기가 돌고 머물고 싶은 'fezh'가 된 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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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는 Fezh가 한남동에 있기 때문에 더욱이, 일본 T-site의 츠타야 서점과 같은 인근 주민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동네 커뮤니티를 위한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또, 강이지와 함께 산책하는 여유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곳을 찾고 머물며 '힐링'하고 '휴식'할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랐다. 이러한 생각들을 PT로 준비해 설명하고 건축팀과 함께 답사를 다녀오기도 하는 등 건축주의 적극적인 지원과 참여 덕분에 'Fezh'가 탄생할 수 있었다.
"츠타야 서점에서의 하루를 판매합니다"_최진홍
해당 기사 전문을 통해 건축주가 어떤 공간을 바랐는지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 B Vol.37 '츠타야'
아직 안 읽어봤는데, 주말에 중고서적으로 구매해서 읽어보고 싶다.
건축주께서 유이화 건축가 이전에 다른 건축가에게 의뢰를 맡겼던 이야기를 해줬다. 그 건축가는 너무 많은 제약 사항을 들먹이며 무리, 불가능을 말했지만, 유이화 건축가는 단 한마디도 불가능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이화 건축가님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유이화 건축가도 좋은 건축주를 만나 행운이었다고 이야기하며, 실제로도 보통의 건축물은 건축주가 없다면 만들어질 수 없다는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 건축물의 용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의 건축물은 건축주가 없고, 그에 따른 자본력이 없다면 애초에 실현될 수 없기 때문에 건축주의 요구사항에 맞도록 설계하는 것이 1순위로 중요하다. 그 안에서 생기는 법적 제약이나 장애물을 어떤 식으로 해결하고 풀어나갈지를 고민하는 것이 건축가의 할 일. 만약 전시시설이나 종교시설이라면 좀 더 조형적으로 디자인할 여건이 있겠지만... "


건축주께서 곡면이 돌출된 Fezh의 형태는 마치 발리 해변에서 봤던 파도와 닮아있고, 전면에 톡 튀어나온 캔틸레버 공간은 파도의 포인트 브레이크(Point Break, 특정 지점에서 항상 같은 형태로 파도가 부서지는 곳) 같다며 웃으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명확한 콘셉트와 이미지로 브랜딩 하는 적극적인 건축주와 이를 현실로 구현하는 불가능을 모르는 건축가가 만나 만들어진 'Fezh'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말 것. 중간에 멈추지 말 것.
방주교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로, 시공이 시작된 상황인데도 더 완벽한 디자인을 위해 도면 수정을 계속하는 이타미 준으로 인해 직원들이 많이 힘들어했다며 유이화 건축가가 말했다. 건축에 사활을 걸었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타미 준이 가진 건축에 대한 열정에 미치진 못하겠지만, 열심히 따라가다 보면 나도 닿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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