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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를 느꼈다

오늘 출근길은 다른 날보다 조금 특별했다. 온갖 사람들이 다 모이기로 악명높은 1호선에서 보통보다 조금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할아버지를 만났다. 중절모를 쓰고 각잡힌 코트를 입으신 할아버지는 겉모습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신사적이었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꾸겨진 채로 서서 '신도림역까지 언제 도착하나' 생각하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손이 가벼워졌다. '뭐지?' 하고 고개를 내리니 앞에 앉아 가시던 중절모 할아버지께서 내 가방을 본인 무릎에 올려 주시고 있었다. 가방에는 책이며 도시락이며 잡다한 물건들로 무게가 조금 나가긴 했다. 손이 가벼워지니 어깨의 긴장도 풀리는 것 같았다. 이런 호사를 누리게 되다니 왠일이래.

 

한껏 편해진 상태에서 주변을 살피니 이제껏 보지 못했던 온기를 나누는 배려의 순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방을 올리려 낑낑대는 아주머니를 무심히 도와주시는 아저씨와 뒤로 맨 백팩을 벗어서 앞으로 돌리는 학생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이 실감났다. 조금만 시선을 돌리니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이 많으니 말이다.

 

문뜩 어렸을 적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서로 인사를 나누었던 옆집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옆집 아주머니는 1층으로 내려가는 3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에도 "예쁘게 하고 놀러가니?" 라며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셨다. 내가 취업하고 대구를 떠나 지내면서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오랜만에 또 아주머니를 마주쳤을 때 혼자사는 것은 어렵지 않은지, 일이 힘들지는 않는지 나의 안부를 물어보시곤 했다. 아주머니는 명절에 전을 너무 많이 구웠다며, 김장을 했는데 몇 포기 남는다며 우리집 초인종을 누르신다. 옆집 아주머니는 숨은 속내 없이 순수하게 남을 챙겨주신다. 그런 아주머니의 선함과 온기가 중절모 할아버지에게서도 느껴졌다. 중절모 할아버지도 그냥 내 짐이 무거워 보이니까 들어주신 것이다. 어떤 보답을 바라지 않는 순수한 선행의 순간이 전철안을 따뜻하게 채우는 온기가 되었다. 

 

"저 이제 내려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마스크를 쓰고 목도리를 목에 둘둘 감아서 눈밖에 안보였을 테지만, 서로 눈웃음을 나누고 나는 썰물에 휩쓸리듯 전철 밖을 나왔다. 오늘은 진짜로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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